한국사

통일 신라와 발해의 발전

럽찐 2022. 1. 16. 21:11

[통일 신라의 발전]

(1) 왕권의 전제화

- 무열왕계의 왕위 계승 

신라에서는 삼국 통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왕권이 크게 강화되었는데, 이는 태종 무열왕이 진골 출신으로 최초로 왕이 된 이래로 무열왕계 직계 후손이 왕위를 계승하는 기틀이 되었다. 무열왕에 이어 즉위한 문무왕은 나·당 전쟁에서 승리하여 삼국 통일을 완성하였다.

- 신문왕의 전제 왕권 확립

신문왕은 김흠돌의 반란 사건을 계기로 귀족 세력을 숙청하고 왕을 중심으로 정치 세력을 다시 편성하였다. 중앙 정치 기구와 군사 조직(9서당 10정)을 정비하고, 9주 5소경 체제의 지방 행정 조직을 완비하였다. 또, 문무 관리에게 관료전을 지급하고, 귀족의 경제 기반이었던 녹읍을 폐지하였다. 나아가 국학을 설립하여 유학 교육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 성덕왕과 경덕왕

8세기에 들어와 성덕왕은 백성들에게 정전을 지급하여 국가의 재정 기반을 강화하였다. 그 후 경덕왕은 국학을 태학감으로 바꾸었으며,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하였다. 한편, 귀족층의 반발로 757년 녹읍을 부활시켰다. 

- 6두품의 활동

중대에는 6두품 세력이 학문적 실력을 바탕으로 왕의 정치적 조언자로 활동하거나 행정 실무를 맡아 보았다. 이 시기 활약했던 대표적인 6두품 출신으로는 강수, 설총 등이 있다. 

(녹읍과 관료전 : 녹읍은 국가에서 관료 귀족에게 지급한 일정 지역의 토지로, 조세 수취와 거주민의 노동력 징발이 가능한 토지였다. 반면 관료전은 조세 쉬치만 가능하였다.)

 

(2) 통치 체제 정비

- 중앙 정치 체제

신라는 통일 이후 왕명을 받들고 기밀 사무를 관장하는 집사부와 그 장관인 시중의 기능을 강화하였으며, 집사부 아래에는 여러 관부를 새롭게 설치하여 통치 체제를 강화하였다. 또한,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사정부도 설치하였다.

- 지방 행정 조직

신문왕 때에는 전국을 9주 5소경 체제로 정비하였다. 주 밑에는 군과 현을 두고 지방관을 파견하였으며, 군사·행정상의 요지에 5소경을 설치하여 수도 금성(경주)이 동쪽으로 치우쳐 있는 취약성을 보완하고 각 지방의 균형있는 발전을 꾀하였다. 이와 함께 외사정을 파견하여 지방관을 감찰하였고, 상수리 제도를 통해 지방 세력을 통제하였다.

- 군사 조직

군사 조직도 재정비하여 9서당 10정을 설치하였는데, 중앙군인 9서당에는 고구려와 백제, 말갈인까지 포함하여 민족 융합을 꾀하였다. 또한, 지방에는 각 주마다 1정씩 두어 국방과 치안을 담당하도록 하였고, 특별히 국경 지대인 한주에는 2정을 두었다.

 

[신라 말기의 사회 변화]

(1) 왕위 쟁탈전과 농민 봉기 발생

- 왕위 쟁탈전의 전개

8세기 후반 이후 국가 기강이 해이해지면서 중앙 귀족들 간의 권력 싸움이 치열해지고, 중앙 정부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중앙 정치가 혼란해지면서 지방 세력들도 왕위 쟁탈전에 가담하여 연이어 반란을 일으켰다. 김헌창의 난(822)과 장보고의 반란(846) 등이 대표적이다. 

- 농민 봉기의 발생

9세기 말 진성 여왕 때에 이르러 사회 혼란이 더욱 심해졌다. 중앙의 정치가 극도로 문란한 가운데,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농민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였다. 여기에 잦은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농민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 이에 농민 중 일부는 고향을 떠나 유랑 생활을 하거나 도적이 되기도 하였으며, 원종과 애노의 난(889), 적고적의 난(896)과 같은 농민 봉기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2) 새로운 세력의 등장

- 호족의 등장

신라의 중앙 정치가 혼란한 시기에 지방에서는 호족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력이 성장하였다. 이들은 중앙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근거지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였는데, 스스로 성주 또는 장군이라 칭하면서 행정권과 군사권을 장악하였고, 경제적 지배력도 행사하였다.

- 6두품 세력의 대두

6두품 세력은 골품제하에서 관직 승진에 제한을 받고 있었기에 진골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골품제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정치 이념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들 중 일부는 지방의 호족 세력과 연계하여 사회 개혁을 추구하였다.

- 새로운 사상의 유행

신라 말에는 중앙 귀족과 연결된 교종 불교의 권위를 부정하는 선종불교가 널리 확산되었으며, 풍수지리설도 유행하였다. 이들 사상은 중앙 정부의 권위를 약화시키는데 영향을 미쳤다.

(호족 : 호족은 지방으로 낙향한 진골 귀족이나 6두품 계층, 무역에 종사하면서 재력과 무력을 키운 세력, 촌의 지방 행정을 담당한 촌주 출신이 주를 이루었다.)

 

(3) 후삼국의 성립

- 후백제의 건국

견훤은 상주 출신으로, 전라도 일대의 군사력과 호족 세력을 토대로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운 후(900)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을 장악하였다. 후백제는 중국의 오월, 후당과 외교 관계를 맺는 등 국제적 감각도 갖추었다.

- 후고구려의 건국

궁예는 신라 왕족의 후예로, 북원(원주) 양길 세력 아래에 있었다. 점차 세력을 키운 궁예는 송악(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웠다(901). 이후 도읍을 철원으로 옮기고 국호를 마진이라 하였다가, 다시 태봉으로 고치고 새로운 정치를 추구해 나갔다. 이로써 신라와 후백제, 후고구려가 병립하는 후삼국시대가 성립되었다.

 

[발해의 성립과 발전]

(1) 발해의 건국과 발전

- 발해의 건국

고구려 멸망 후 당은 고구려의 옜 땅에 안동도호부를 두고 많은 고구려 유민을 당으로 이주시켰다. 그러나 고구려 유민들은 곳곳에서 당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였다. 7세기 말 당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고구려 장군 출신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 집단을 이끌고 옛 고구려 땅으로 이동하여 동모산에서 발해를 세웠다(698). 발해의 건국으로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공존하는 남북국 시대를 이루게 되었다.

- 발해의 발전

대조영(고왕)의 뒤를 이은 무왕은 '인안'이라는 연호를 사용하는 한편, 동북방의 여러 세력을 복속시켜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에 신라는 북방에 성을 쌓았고, 당 또한 흓 말갈을 이용해 발해를 견제하였다. 그러자 무왕은 장문휴의 수군으로 당의 산동지방(등주)을 공격하는 한편, 요서에서도 당과 격돌하였다. 무왕은 727년 일본에 사신을 보내 통교하였는데,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고구려를 계승하였음을 밝혔다. 문왕 때에는 당과 우호를 맺고 문물을 받아들여 체제를 정비하였으며, 신라와도 상설 교통로를 개설하여 대립관계를 해소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도를 중경에서 상경으로 옮겼으며, '대흥' 등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 발해의 전성기

발해는 9세기 전반 선왕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대분의 말갈족을 복속시켜 요동지역으로 진출하였으며, 지방제도를 정비하였다. 당은 이러한 발해를 '해동성국'이라 불렀다.

 

(2) 발해의 통치 제도

- 중앙 정치 체제

발해의 중앙 정치 조직은 당의 제도인 3성 6부를 기본으로 하였지만 운영과 명칭은 독자적으로 하였다. 3성 중 정당성이 최고 집행 기구로, 그 장관인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였따. 정당성은 6부를 둘로 나누어 관할하였는데, 6부의 명칭에는 유교 이념이 반영되어 있다. 그 밖에 관리를 감찰하는 중정대, 국립 학교인 주자감 등을 설치하였따.

- 지방 행정 조직

지방 행정 구역은 5경 15부 62주로 정비되었다. 5경은 전략적 요충지에 두었으며, 15부 62주와 그 아래 현에 지방관을 파견하였으며, 말단 촌락은 촌장이 관리하였다. 발해의 군사 조직은 중앙군인 10위와 별도로 변경을 방위하는 지방군을 두었다.

 

(3) 발해의 멸망과 부흥 운동

- 발해의 멸망

10세기 초반 중국에서 당이 멸망하고 5대 10국의 혼란이 일어나자 거락이 세력을 확대하여 발해를 공격하였다. 당시 발해는 귀족의 내분을 겪고 있어 거란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다(926).

- 발해의 부흥 운동

발해가 멸망한 후 발해 유민은 후발해, 정안국 등을 세우며 200여 년간 부흥 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발해 왕자 대광현은 수많은 유민을 이끌고 고려로 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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