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삼국과 가야의 성장

럽찐 2022. 1. 10. 22:37

[고대 국가의 성립]

삼국은 초기부터 주변 소국을 활발히 정복하면서 영토를 넓혔고, 이를 주도한 국왕의 권력도 점차 강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연맹 왕국 단계에서 벗어나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로 발전하였다. 고대 국가에서는 왕위 세습권이 확립되고, 족장 세력은 왕권에 복속되어 중앙 귀족으로 편입되었다. 이에 따라 중앙 관제가 정비되고 관리의 복색과 관등이 제정되었으며, 확대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지방 제도도 정비되었다. 또한 율령을 반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고, 불교를 받아들여 국왕 중심의 지배 이념을 확립하고 집단의 통합을 강화하였다.

 

[고구려의 건국과 성장]

- 고국천왕 : 고국천왕 때에는 부족적인 전통을 지녀 온 5부가 행정적 성격의 5부로 개편되었고, 왕위 계승도 형제 상속에서 부자 상속으로 바뀌었다. 한편 고국천왕은 을파소를 국상으로 기용하여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 미천왕 : 미천왕 때에는 중국이 5호 16국으로 나뉘어 혼란한 틈을 타 낙랑군을 완전히 몰아내고, 대동강 유역을 확보하는 등 남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고국원왕 때에는 전연과 백제의 연이은 침략으로 왕이 전사하는 등 국가적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 소수림왕 : 소수림왕은 전진과 국교를 맺어 대외 관계를 안정시켰으며, 율령 반포, 불교 공인, 태학 설립 등을 통해 중앙 집권적 국가 체제를 강화하였다.

 

[백제의 건국과 성장]

백제는 한강 유역의 토착 세력과 고구려 계통의 유이민 세력의 결합으로 성립되었다. 마한의 여러 소국 중 하나로 출발한 백제는 농경과 교통에 유리한 한강유역을 발판으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 고이왕 : 고이왕 떄에는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정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이 무렵 백제는 6좌평의 관제를 마련하고 관리의 복색을 제정하는 등 지배 체제를 정비하여 중앙 집권 국가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 근초고왕 : 백제는 근초고왕 떄에 크게 발전하였다. 안으로는 왕윙의 부자 상속제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밖으로는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황해도 일대까지 진출하였다. 남쪽으로는 마한을 통합하여 전라도 지역을 차지하였으며, 낙동강 유역의 가야에 대해서도 지배권을 행사하였다. 한편, 중국의 정세가 혼란한 틈을 타 산동 반도와 요서 지방까지 진출하였으며, 일본의 규슈 지역에도 진출하였다.

- 침류왕 : 그 후 침류왕 때에는 동진으로 불교를 받아들여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사상적 통합을 꾀하였다. 그러나 백제는 4세기 말부터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국력이 약화되었다.

 

[신라의 건국과 성장]

신라는 진한 소국의 하나인 사로국에서 출발하였는데, 경주 지역의 토착민 집단과 유이민 집단이 결합해 건국하였다. 이후 6부가 여전히 독자적인 세력 기반을 유지하는 가운데 박, 석, 김씨가 교대로 이사금(왕)에 선출되었다.

- 내물왕 : 내물왕 때에는 낙동강 동쪽 진한 지역을 대부분 차지하고, 고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김씨가 왕위를 독점하기 시작하였고, 왕을 부르는 칭호도 대군장이라는 뜻의 마립간으로 바뀌었다. 이 무렵 신라에 침입해 온 왜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고구려 광개토 대왕 군대가 신라를 지원하였고, 이를 계기로 신라는 한때 고구려의 정치적 간섭을 받기도 하였다. 

 

[가야의 성장과 멸망]

- 전기 가야 연맹 : 가야의 여러 나라는 변한의 소국에서 시작되었다. 변한 지역에서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농업 생산력이 향상되면서 여러 정치 집단이 성장 하였는데, 3세기에는 김해의 금관가야가 중심 세력이 되어 전기 가야 연맹을 이루었다. 가야의 소국들은 변한 시대부터 발달하였던 우수한 철기 기술과 편리한 해상 교통의 이점을 이용하여 낙랑군, 왜를 연결하는 중계 무역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금관가야는 5세기경 신라를 지원하기 위해 출병한 고구려군의 공격으로 몰락하여 가야 연맹의 주도권을 상실하였다.

- 후기 가야 연맹 : 5세기 후반 이후에는 고령 지방의 대가야가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는데, 이를 후기 가야 연맹이라고 한다. 이후 신라와 백제의 다툼 속에서 후기 가야 연맹은 분열하여 김해의 금관가야는 법흥왕 때 신라에 복속되고 대가야는 진흥왕 때 신라에 의해 정복되었다. 

 

[삼국의 통치 체제]

- 귀족 회의 제도 : 삼국 시대에는 왕권이 강화되었지만 귀족의 영향력도 여전하였다. 고구려는 제가 회의, 백제에는 정사암 회의, 신라에는 화백 회의가 있어 귀족이 모여 대표를 선출하고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였다.

- 통치 조직 : 삼국 시대에는 족장 세력이 중앙 관리로 전환되면서 관제와 관등제가 정비되었다. 고구려는 대대로 이하 10여 관등을 두었고, 백제는 6좌평제와 16관등의 틀을 갖추었다. 신라는 17관등제를 정비하고 귀족 세력의 대표로 상대등을 두었다.

- 지방 제도 : 삼국은 최상급 지방 행정 단위로 부(욕살)와 방(방령) 또는 주(군주)를 두었으며, 그 아래 성이나 군을 두었다. 그러나 말단 행정 단위인 촌에는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고 토착세력을 촌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