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국가의 문화 교류]
(1) 고대의 문화 교류
- 삼국의 문화 교류
고구려는 중국의 남북조와 북방 민족 등 주변국과 교류 또는 경쟁하며 성장하였다. 백제는 주로 바닷길을 통해 남중국과 교류하며 선진 문물을 수용하였고, 중국과 가야, 왜를 연결하는 서남해 교역을 주도하였다. 신라는 초기에 고구려와 백제를 통해 중국 문물을 수용했으나,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후로는 중국과 직접 교류하였다.
- 삼국의 서역과 교류
우즈베키스탄의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는 고구려 사신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모습이 그러져 있고,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서역 계통의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또한 경주의 계림로에서 출토된 금제 장식과 보검과 미추왕릉에서 출토된 유리그릇은 고대 신라가 서역과 교류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2) 통일 신라와 발해의 문화
- 통일 신라
통일 후 신라는 삼국의 문화를 종합하여 민족 문화의 기틀을 마련했고, 당·인도·이슬람 문화도 받아들여 더욱 세련된 문화를 일구었다. 또한, 불국토의 이상을 추구하여 통일과 균형미가 돋뵈는 예술을 완성하였다. 신라 말에는 선종이 유행하고 지방 문화의 역량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문화 경향이 나타났다.
- 발해
발해는 고구려 문화를 바탕으로 당 문화를 수용하였는데, 사회 저변에는 소박한 말갈 문화도 남아 있었다.
(3) 일본으로 전파된 우리 문화
- 삼국과 가야 문화의 일본 전파
백제는 4세기에 아직기와 왕인이 일본에 건너가 한자와 유학을 가르쳤다. 또한, 성왕 때에는 노리사치계가 불경과 불상을 전해주엇다. 고구려는 7세기 초에 담징이 종이, 먹의 제조 방법과 5경을 전하였고, 승려 혜자는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다카마쓰 고분 벽화가 수산리 고분 벽화가 비슷한 것은 고구려 문화가 일본에 전파된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신라는 조선술과 축제술 등을 전해 주어 일본에서는 '한인의 연못'이라는 이름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가야도 철기와 토기 제작 기술을 전해 주어 일본의 스에키에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삼국과 가야의 문화는 야마토 정권의 성립과 아스카 문화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 통일 신라와 발해 문화의 일본 전파
통일 신라 문화는 일본에서 파견해 온 사신을 통해서 전파되었는데, 신라의 불교와 유교 문화는 일본 하쿠호 문화의 성립에 기여하였다. 8세기 신라 승려 심상은 일본에 건너가 일본 화엄종 성립에 영향을 미쳤다. 발해는 양태사 등 문인을 사신으로 파견하였으며, 역법, 불경, 음악 등을 전해 주었다.
[불교, 도교, 풍수지리설]
(1) 불교의 수용과 발전
- 삼국의 불교 수용
삼국은 곧 국가로 성장한느 과정에서 왕권을 중심으로 정신적 통합을 이루고자 불교를 받아들였다. 고구려는 4세기 후반 소수림왕 때 전진으로부터, 백제는 침류왕 때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하였다. 반면 신라는 6세기 법흥왕 때 와서야 불교를 공인하였다. 불교는 왕권 강화를 이념적으로 뒷받침하였는데, 신라의 경우 여러 왕들이 불교식 이름으로 이름을 지었으며, 왕실을 석가모니 집안의 환생으로 여겼다. 또한, 승려 원광은 세속 5계를 지어 호국 사상과 새로운 사회 윤리를 젋은이들에게 가르쳤다. 신라에서는 귀족들이 업설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귀족 중심의 신분 질서를 정당화하였다. 또한, 미륵불이 나타나 이상적인 불국토를 건설할 것이라는 미륵불 사상이 널리 퍼졌으며, 화랑이 미륵불의 화신이라는 설화가 전해지기도 하였다. 삼국 시대의 불교는 호국적인 성격이 강했다. 신라 진흥왕 때부터 시작된 팔관회는 호국 불교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신라 선덕여왕 때 건립된 황룡사 9층 목탑, 백제 무왕 때 건립된 미륵사는 호국의 기원이 담긴 건축물이다.
- 통일 신라의 불교
통일기 무렵 원효와 의상과 같은 뛰어난 승려들이 활약하였다. 원효는 불교 이론을 폭넓게 이해하고 이를 정리하여, 모든 것이 한마음에서 나온다는 일심 사상의 이론적 체게를 마련하였다. 이와 함께 아미타 신앙을 직접 전도하며 불교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의상은 당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와 신라 화엄종을 열었으며,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조화를 이룬다는 화엄 사상을 바탕으로 교단을 형성하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또한, 관세음보살의 자비로운 마음에 기대어 현세에서 고난을 구제받고자 하는 관음 신앙을 이끌었다. 혜초는 인도에 가 새로운 불교를 연구하였으며, 자신이 여행한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풍물을 기록한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 선종의 유행
선종은 경전화 교리를 중시하는 교종과 달리 개인이 스스로 사색·참선이라는 수행을 통하여 자기 마음속에 있는 불성을 수행을 통하여 자기 마음속에 있는 불성을 깨닫는 것을 강조하였는데(불립문자, 견성오도), 이것이 당시 지방 각지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려는 호족의 성향과 일치하였다. 그리하여 선종은 호족들의 후원을 받으면서 빠르게 성장하여 후원 호족의 근거지 인근에 9산 선문을 형성하였다.
- 발해의 불교
발해의 불교는 고구려 불교의 전통을 계씅하였고,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불교가 발전하여 많은 사원이 건립되었다. 문왕은 자신을 전륜성왕이라 일컬으며 무력이 아닌 불법으로 세상을 통치하고자 하였다.
(2) 도교와 풍수지리설
- 도교
산천을 숭배하고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도교의 신선사상은 귀족 사회를 중심으로 유행하였으며, 예술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신선의 모습과 사신도, 산천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담고 있는 백제의 산수무늬벽돌과 신선이 사는 이상 세계를 표현한 백제 금동 대향로에도 도교 사상이 잘나타나 있따.
- 풍수지리설
신라말 도선이 들여온 풍수지리설은 예언적인 도참사상과 연결되어 자연환경이 국가와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는 믿음으로 확대되었다. 풍수지리설은 호족의 근거지를 길지, 명당으로 합리화하고 경주 중심의 신라 정부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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