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구석기 시대가 시작된 것은 약 70만 년 전부터였다. 구석기인들은 동물의 뼈나 뿔로 만든 뼈 도구와 주먹도끼와 찍개 같은 뗀석기를 사용하였다.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평남 상원 검은모루 동굴, 평남 덕천 승리산 동굴, 충북 단양 금굴, 충북 청원 두루봉 동굴, 경기도 연천 전곡리 유적,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 등이 있다. 구석기인들은 주로 동굴이나 막집, 바위 그늘 등에 무리를 지어 살며 채집과 사냥을 하면서 살았으며, 더 나은 생활환경을 찾아 오랜 세월에 걸쳐 이동 생활을 하였다. 구석기시대 말부터 기온이 따뜻해지고 자연환경이 변하자 사람들은 먹잇감을 따라 이동하거나 환경에 적응하면서 도구를 더욱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슴베찌르개와 같은 이음 도구와 잔석기, 활 등이 등장하였다. 구석기인들은 석회암이나 동물의 뼈 또는 뿔 등을 이용하여 조각품을 만들었는데, 공주 석장리와 단양 수양개에서 고래와 물고기 등을 새긴 조각이 발견되었다. 이는 사냥감의 반성을 비는 주술적 의미가 깃든 것으로 보인다.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8000년경 자연환경과 기후 조건이 오늘날과 비슷해지면서 시작되었다. 신석기인들은 다양한 간석기와 토기를 만들었다. 초기에는 이른 민무늬 토기와 덧무늬 토기를 사용하다가 점차 빗살무늬 토기를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실을 뽑는 도구인 가락바퀴와 뼈바늘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옷을 만들어 입었음을 알려준다.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강원 양양 오산리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 황해 지탑리 유적 등이 있는데, 이들 유적은 주로 강가나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다. 신석기시대 초기에는 여전히 채집, 사냥, 물고기 잡이를 주로 하였으나 점차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여 스스로 식량을 생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일부 신석기 유적에서 발견되는 탄화된 조, 피, 수수 등은 이 시기에 농경 생활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도구가 발달하고 농경이 시작되면서 주거 생활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강가나 바닷가 등에 정착하여 생활하였으며, 4~5명 정도의 가족이 거주할 수 있는 규모의 움집을 짓고 살았다. 그리고 움집 중앙에는 불씨를 보관하거나 취사와 난방을 위한 화덕이 위치하였다. 신석기시대에는 혈연을 바탕으로 한 족외혼을 통해 씨족 또는 여러 씨족이 모여 부족 단위로 마을을 이루고 생활하였다. 구성원이 함께 생산하고 함께 나누는 평등한 공동체였다. 신석기인들은 농경과 밀접한 태양, 물 등의 자연물이나 자연현상에 정령이 있다고 믿었으며(애니미즘), 특정 동식물을 자기 부족의 수호신으로 삼아 숭배하였고(토테미즘), 무당과 그 주술을 믿기도 하였다(샤머니즘). 또한,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영혼과 조상을 숭배하였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원시적인 종교의식을 바탕으로 조개껍데기 가면, 얼굴 모양의 토기, 동물 뼈나 이빨로 만든 치레 걸이, 동물 모양의 조각품 등 다양한 예술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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